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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열흘 차 백수가 되었다.


아직 내가 자발적 실업자라는 건 실감이 안나지만, 생각보다 이 생활에 빠르게 적응 중이다.

월요일이든 화요일이든 수요일이든, 늦잠 자는 것도 마치 처음부터 백수였던 것 처럼 어색함 없이 실천 중이며

직장인일 때 마냥 부러워하며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 시간에 저기 앉아있는 것인가' 궁금해하던 그 객체가 되어, 

평일 낮에 카페에 앉아 '팔자 좋은 여자' 놀이를 즐기는 중이다.

평일 11시에 넓은 창이 있는 카페 창가에 앉아 테이블 위에 반쯤 걸터 앉은 햇살을 맞으며

멘탈 강화와 마음의 안정을 찾아준다는 컬러링 북을 색칠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나의 염원이 

언제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기적적인 시간의 연속이다. 



오늘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새로 산 토스트기에 집 앞에서 사온 우유식빵 두 쪽을 넣어두고

얇은 베이컨을 앞뒤로 바짝 구워놓고

튕겨져 나온 식빵 한 쪽에 홀그레인 머스타드 소스를 펴바르고

그 위에 치즈를 한 장 올려놓고 다른 식빵으로 덮어 

치즈가 식빵의 온기를 느끼고 흐트러질 수 있게끔 잠시 두었다가

적당한 온도에 바삭거리는 토스트를 베어물고

어제 일시정지를 눌러두었던 노래를 다시 듣다가

미세먼지가 보통으로 바뀌는 순간을 포착해

주섬주섬 밖으로 걸어나가 

오랜만에 그란데 사이즈 카페라떼에 바닐라시럽을 마구 추가하고

죄책감에 우유는 저지방우유로 바꾼 후

호로록. 한 모금 마시자마자 저지방 우유로 바꾼 것을 후회하며

몇 페이지 남지 않은 책을 보다가

다시 집으로 주섬주섬 들어왔다.



그냥 이게 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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