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단단하게 머무르는 사람은 그 자체로 대단하고 멋있다.나 또한 오래전부터 그런 사람이기를 바랐고운 좋게도 그런 사람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에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꿈꿨었다.다만 그것 뿐이었다. 스스로의 한계를 만드는 것으로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나의 가능성을 단정 지어, 더 이상 그 길을 바라볼 수도 없게 눈을 감아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아주 단단하게 그저 그 자리에서, 나의 몫을 해내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단단하게만 보였던 나의 유리벽에는어느 새, 예리하고 날카로운 수 천 개의 실 같이 가느다란 선이나의 시야을 가릴 정도로 새겨져 있었다. 바람과 비, 그리고 햇살에도 선의 깊이는 깊어지고, 또렷해져유리벽에 기대어 선 나에게 끊임없이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온전한 나를 두고, 지..
역시 꾸준히 기록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두 달만에 돌아왔다. 혼자만의 일기장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다시 블로그에 어느 정도 정제된 글을 쓰기로 했다.나에게는 오히려 혼자만의 공간에서 솔직한 감정을 쏟아내는 일은 어려운 것이어서왈칵 쏟아지는 오묘한 감정에 적절한 단어를 선택할 수 없어 일기장은 그냥 살짝 숨겨두었다. 나의 모습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던 시간이었다.정말 오랜만에 도전하는, 오롯한 나만의 미션에 성취감을 느꼈지만, 여전히 '다행' 정도에 그치는 감정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역시 인생은 불확실하다.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이 불확실함을 온전히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조금 더 버텨보고,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제는 어..
퇴사하던 날은 아직 생생하다.그냥 퇴사하는 날이라고 하니, 괜히 하늘 사진도 한 번, 셀카도 한 번 찍었었는데그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다르지 않았던, 평범한 아침이었다. 많은 사람을 만났다.그 날은 배터리 충전을 5번이나 했었다.정말 오랜만에 서로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며,동시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그 인연들에게 이별의 인사를 전했다. 3년 반이라는 시간이 짧지만은 않았구나, 새삼스레 느끼며요란하고, 시끌벅적하게.늦은 오후까지 사무실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그렇게 마무리를 지었었다.마치 졸업식을 하는 것 처럼. 나 혼자. 학창 시절 졸업식이 그랬듯오기 전에는 너무나 특별할 것 같았던 순간들이막상 다가오면허무하게 사라진다많은 기대를 하면 그만큼 큰 허탈감이 찾아 올 거라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
오늘까지 휴가다내일부터 진백수다그래서 오늘 일기를 쓰지 아니할 수 없다이중부정은 들을 땐 짜증나는데 내가 쓸 땐 왜인지 모를 재미가 있다 지금 나에게는 두 가지 고민이 있다. 첫 번째오늘 새벽에 사내 복지몰(?)을 통해 제품을 샀는데,내일부터 계정 없어지는 거니까 오늘 결제 한 건 적용해주겠지막 소급해서 없애고 그러면 안되는데 빨리 배송해줘요 두 번째4월 10일자 퇴사예정으로 결재 올리면 된대서 올렸는데 그럼 4월 10일까지 근무한게 되는거.. 맞겠지4월 10일까지 휴가 썼...으니까 맞을거야 그럴거야 그래야하는데그리고 아직 퇴직원 결재가 안남퇴직 처음해봐서 모르겠음.. 뭐 알아서 해주겠지 진백수가 된 이 시점에서 왜 백수 생활에 대한 고민이 없나 싶은데이제까지 계속했는데 굳이 뭐 오늘까지 해야하나내일해..
창 넓은 카페에서 몇 시간째 같은 자리에 앉아 날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본다. 언제 또 봄이 왔는지눈을 맞추고 있던 꽃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꽃잎이 떨어진다내일은 아침부터 비가 온다더니하얀 구름 사이에 회색 구름이 귀엽게 한 두뭉치 끼어서 둥둥거린다 쨍하고 하늘이 마냥 파랗기만 하더니오늘의 저녁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지이제는 채도가 살짝 낮아지고 있다나는 이 시간의 이 모습이 그렇게 좋더라. 제일 큰 사이즈로 커피 한 잔 시켜놓고내 하루가 아닌세상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 지 지켜본다괜히 감성이 몽글몽글 뭉글뭉글 몰랑몰랑 말캉말캉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이렇게 마냥 하루를 흘려보냈던 날이 있기는 했었나 싶다 실체없는 장벽에 치열하게 부딪히며바쁘게 살았던 지난 하루, 하루, 그리고 또 하루도 나에게는 즐거움이고..
* 콜포비아 : 전화와 공포증의 합성어로, ‘콜 포비아(call phobia·통화 공포증)’는 전화로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 늘면서 생겨난 전화 통화 기피증을 뜻한다 정확히는 전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공포감을 느꼈다고 하는게 맞겠다. 너무나도 다이나믹하게, 실시간으로 돌아가는 업무를 담당하며전화, 문자, 그리고 카카오톡으로 밤낮가리지 않고 쉴 틈 없이, 누군가와 항상 연결되어 있었다. 9-6 업무 시간에는 당연한 일이겠지만,휴대폰은 공휴일, 주말, 늦은 밤, 심지어는 새벽까지 가리지 않고 울려댔다. 상단 바가 살짝 깜빡이며 잠깐 멈추는 것을 신호로, 진동이 울리기 시작하면 순간적으로 모든 생각이 멈추고 뒷목이 뻐근해졌다. 부모님과 통화를 하다가도 진동이 울리면갑자기 찾아오는 엄청난 스트레스..
퇴사 열흘 차 백수가 되었다. 아직 내가 자발적 실업자라는 건 실감이 안나지만, 생각보다 이 생활에 빠르게 적응 중이다.월요일이든 화요일이든 수요일이든, 늦잠 자는 것도 마치 처음부터 백수였던 것 처럼 어색함 없이 실천 중이며직장인일 때 마냥 부러워하며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 시간에 저기 앉아있는 것인가' 궁금해하던 그 객체가 되어, 평일 낮에 카페에 앉아 '팔자 좋은 여자' 놀이를 즐기는 중이다.평일 11시에 넓은 창이 있는 카페 창가에 앉아 테이블 위에 반쯤 걸터 앉은 햇살을 맞으며멘탈 강화와 마음의 안정을 찾아준다는 컬러링 북을 색칠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나의 염원이 언제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기적적인 시간의 연속이다. 오늘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새로 산 토스트기에 집 앞에서 사온 우유..
스트레스가 많던 날은 항상 잠들기 전, 그래 돈이나 벌러 가자. 젊은 나이 놀아봐야 뭐하니. 라며, 내일 눈을 뜨면 찾아올 공포스러운 월요일을 받아들이는 나름의 주문을 외우고 잠을 청했다.하지만 다음 날 머리에 박힐 스트레스의 크기를 알았기 때문인지, 그 주문을 외운 날에는 어김없이 잠을 설쳤었다.알람이 울리기전에 순간적으로 말똥말똥 눈을 뜨고 일어났지만 결국 다시 잠이 들어, 아슬아슬한 월요일 출근을 맞이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회사에 가지 않아도 된다. 주말이나 휴가와는 다른 느낌이다.실제로는 작년에 모아 둔 연차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재직 중'인 상태지만이제 나는 부랴부랴 젖은 머리 휘날리며 회사 게이트에 사원증을 찍는, 부지런한 생활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오래 전부터 상상하던 ..
오늘도 별 다를 것 없는똑같은, 평범한, 늘 그랬듯 오늘도 그러했던 출근길이었다. 길지 않은 출근길, 회사 앞에서 마주치는 동료들이 다들 한 마디씩 던진다.'얼굴 좋아졌네~'티가 나냐고 가볍게 농담으로 웃어 넘기지만속으로는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퇴사가 퇴사를 앞둔 사람의 표정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논하며 퇴사를 종용하고 싶은 심정이다.물론 행복하지 않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다. 퇴사를 알리기 직전 한 달은, 1달여만에 3kg가 빠졌다. 입사와 함께 시작되어 한 달 전 까지 나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위경련과 장염은퇴사를 결심한 지 1주일만에 거짓말처럼 사라져 아직까지'는' 봉인되어있고, 덕분에 퇴사와 함께나는 소화 천재가 되었다